바쿠 외곽,(2034.9.7)

황량하기 짝이 없는 벌판은 사람도, 짐승도, 심지어 식물도 발 붙이기 어려운 그저 황무지의 연속이다. 나즈막한 구릉 뒤로 벌거벗은 능선에는 시야를 흐리는 모래바람뿐 무념의 회색 황무지의 연장선이다. 이처럼 산에 나무는 커녕 풀 한포기 발을 못 부치니 계곡따라 생길법한 냇길도 흔적이 없으니 아무리 평지라도 농사는 상상외의 꿈, 생물체는 물이 생의 근본인데 그 너른 버려진 땅이 아쉽기만 하다.

서부로 버스 타고 세 시간 지나니 산간부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쩌다 들판에 키 낮은 잡목들이 군데 군데 군생하더니 조금 더 달려 해발 300미터 구릉지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건천에 물이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해발 500미터를 넘어 산간부에서 비로소 한국형 산악, 수목으로 가득 찬 산림지대와 소리높여 흐르는 제법 규모있는 개천도 볼 수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버스 차창 밖 자연의 손님맞이 변화에 감사하며 5시간 달려 하차한 소도시는 우리 산골 어느 소읍과 다르지 않아 친근감에 발길이 가볍다.

장거리 여행에 지친 방문객 환영사는 정비된 너른 폭 하천이 헌상하는 합창곡, 귀가 번쩍 트이는 우렁찬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긴장이 풀어진다. 산림이 짓푸르러야 물이 흐르고 곡물도 가꾸며 살아갈 터전이 생기니, 천년 전 대상의 발길도 오래 머무른 곳이라 짐작된다.

도심 어디에서나 집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굵직한 쇠파이프가 궁금, 그러나 답은 명료, 불의 나라답게 천연가스 공급선이 주택마다 거미줄처럼 퍼져 무료 연료 공급 혜택이다. 바쿠에서는 한낮 더위와 싸우다 지쳤더니, 산간부 시원한 세키에서는 긴팔 옷부터 꺼내면 되니 더위가 안가면 내가 가면 된다는 행려객의 안성맞춤식 안이한 처세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