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旦의 조지아 이모저모(2024. 9.14)
크루소 트레킹은 자연과 호흡을 맞추는 나들이였다.

록색 일변도 경사진 산자락은 소와 양들 놀이터, 우리가 걷는 길 주인은 소떼들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깔린 부변물을 요리조리 피해 걷노라면 허가없이 들어온 남의 집안을 걷는듯 하다. 어제 걸었던 주타 오르막 길은 부자 동네라 부변물 천지, 발 내딛는 특허가 필요할 정도였다.

한적한 시골 중 러시아와 국경선이 인접하고 정치적 불안감이 상존하는 변방이라 트루소 길은 소들 차지가 못되는 시골 빈촌이다. 자갈 깔린 도로보다 풀 덮인 갓길이 걷기엔 상급이다.

광물질을 포함한 온천, 생수가 솟아나는 지역이라 흙도 바위도 붉은 빛이 드러나고 산사태 위험지역 표지는 없어도 급경사와 주상절리 병풍면은 가슴 졸이게 만든다. 이방인들은 편한 걸음이 아니지만 원주민격인 소와 양들은 곡예사처럼 50도가 넘을 듯 가파른 풀밭을 종횡으로 누비며 약 오르지 숨바꼭질 하는 중이다.

폐허로 변했지만 유적지 모양이 남아 있는 관망 보루 주변은 이제 소들 천국, 젖소들 시위, 지휘관급 숫소들 회합, 고인 물 족욕 즐기는 신참, 산마루 대장급 위세 과시, 이 모든게 그들 하고 싶은대로이니 외국 불청객이 말발이 안선다. 오늘은 욕심 버리고 주인장 소처럼 느긋한 행보를 누비며 쇠똥철학에 심취해 보리라.

자연은 말 없이 날더러 살라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손길이 닿지 않은 미답의 고봉준령, 바위 틈에서 새어나와 강물의 시원을 이루는 물줄기의 선명한 어울림은 숨쉬는 청량제, 발 소리 크게 날가봐 조심 조심, 넓게 자리한 쓸쓸한 광천수 평원은 드문 래방객 발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연에 취해 무심지경으로 이어가는 발소리에 놀란 하늘이 오후 들자 새털구름을 모아 시샘 소나기로 내려 거친 걸음에 배어나온 땀을 식혀 준다.

어깨를 적시는 빗방울을 비옷으로 버티다가 귀로에 오르니 어제보다 더 길어진 러시아행 화물트럭의 대기 행렬, 국제 화물의 운송 현장에서 장기전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여파를 목도한다. 비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며 기온을 끌어내리니 드디어 가을정국으로 전환이 이뤄진다.

우선 옷부터 챙기고 또 다른 조지아 자연의 계절바뀜에 동참하며 포도주 원산지, 신화의 나라, 신들이 아직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코카사스 산악 자연과 문화 탐방을 이어가리라 남은 일정을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