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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旦의 조지아 트레킹 이모저모
아침 8시 서둘러 길을 나서니 우려와 다르게 햇살이 잠간 비치다 짙은 안개가 시가지 외곽을 뒤덥고 짙어 지고 있어 불안했지만 출발을 강행했다. 서늘한 날씨라 수은주를 보니 12도, 낮 최고도 14도라니 해발 1,700 고지 티를 낸다.
시즌이 살작 지나긴 했어도 트레킹 명소라 걷기 호사가들이 십여 명 눈에 띈다. 여행 안내소도 폐문, 이른 아침이라 물어 볼 행인도 없고 가게도 문 열기 전, 답답이 걸음마가 빈둥거린다. 둘러봐도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아 전화기 꺼내 들고 차가운 안내에 순종할 수 밖에, 더딘 걸음이 안개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본격적인 코스로 접어 들어 더듬거리며 점차 고도가 오르니 주변 모든 산 정상 봉우리가 눈에 덮혀 장관이다. 알프스 한 구석이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온듯 착각도 잠시, 구름이 발 아래 깔리니 바로 선계에 입문한 어설픈 신선 고도 적응에 여념이 없다. 나즈막한 오름새가 마치 지리산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내딛기 시작하는 코스와 흡사하다.
수풀도 깊고 임도도 잘 가꾸어 놓아 수월한 트레킹에 만족스런 표정이 걷는 자들 만면에 번진다. 아, 드디어 유럽 최고봉이 자리잡은 코카사스 산맥 정상 메스티아 트레킹에 발을 담궜구나, 이번 장기 여행의 절정에 오르고 있구나 하고 느끼니 걸음이 가벼워진다. 백산처럼 하얀 눈을 머리에 인채 환영 눈짓을 흘려 보내는 웅장한 준봉들 도열에 감사한다.
제1일차 16키로 걷는 길엔 급경사 구역은 거의 없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 1.903미터 고개를 넘자 눈앞에 또 다른 산맥군이 평행선을 그으며 위용을 자랑한다. 그 새로 많은 흐린 강물이 소리내어 거친 호흡을 풀어내 강줄기를 내려 보다,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들어선다. 장기간 트레킹을 지속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체질적으로 적응이 되어가며 마라토너들 처럼 '런너의 하이' 상태를 경험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해 행보가 느리기만 할 뿐이다.
러시아와 인접해 항상 외침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 온 길고 오래된 약자 그룹의 참상이 메스티아 주변에 깔려있다. 마을마다 20~25미터 사각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토탑이 많이 남아 있는데 위기시 가족들 안전을 위한 긴급대피 시설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일부 개조하여 사용되고 있다. 조지아 전역을 다니며 많은 목초지가 널려 있었지만 어느 곳도 울타리나 경계 표지가 없어 소유권, 공동 방목 등 의문이 들었는데 이곳 산악지대 좁은 면적의 목초지나 마을 주거지에도 예외없이 울타리가 둘려 있고 소유권 의식이 강하게 표출된다. 아마도 전통적인 외부 압제 경험이 축적되어 내것 지키기가 기본이 된 것이 아닐까 공허한 추론을 재미삼아 풀어 본다.
트레킹에서는 점심 처리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 중 하나다. 이른 아침을 적당히 때우고 일찍부터 걷다 보면 입에 침이 마르고 배꼽시계도 끄떡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아칲 출발 전에 밥을 해서 주먹밥 대신 각자 배낭에넣고 왔기에 간단한 요기가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성의와 기술이 남 다른 할아방 쉐프에게는 그리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무겁게 채워 온 배낭 속에는 온갖 요리 도구와 재료가 가득했다. 미역국 재료, 감자, 고추, 된장, 갈빗살, 고추장, 갖은 양념과 가스통, 버너, 코펠, 조리기구 등 부엌을 통채 짊어지고 왔다. 금새 끓여진 고수한 미역 국물과 김에 뭉쳐진 주먹밥, 이런 환상의 조합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트레킹의 진수는 바로 먹거리에서 찾아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