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旦의 조지아 - 제11신

젊은이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길을 걷는다. 윤동주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순진무구한 시인으로 자연의 숨기고 싶은 일면을 바람에 빗대어 노래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러나 자연 속에 그냥 묻혀 지내지 못하는 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인간세의 숙명을 끄집어 내며, 그에게 주어진 그만의 길을 걸어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삶에 대한 여말이 남아있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 자리로 돌아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한다고 토로한다. 나아가 자연이 승화하여 인간에게 요구하는대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맹세한다.

바투미, 하루 종일 내리던 후줄근한 비가 저녁무렵 그치자 흑해 바람을 타고 해가 살짝 얼굴을 내미니 이곳 날씨도 믿기힘든 변덕쟁이다. 이어진 야경은 별천지, 온통 현란한 네온사인과 장식으로 반짝이게 꾸민 유럽광장 주변엔 인파로 분주하다. 춤추는 분수가엔 어린이 동반 가족 나들이 모습도 보여 흐믓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문화센터 광장은 뮤지션과 시민들이 화합하여 멋지고 신나는 춤의 무대가 펼쳐저 분위기가 살아난다. 문 닫힌 성당은 몸살 앓는 환자처럼 문양만 밝히고 숨을 고르고 있다.

밝게 갠 이른 아침 북 카스티아 산맥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려고 서둘러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100여 키로 달려 서부 산간지대 교통 요지 주그디디에 도착, 다시 목적지 마스티아로 가는 6인승 승합차에 타고 120키로, 도합 230여 키로 이동했다.

서울에서 설악산 가는 정도 거리를 6시간여 달리니 도로 상태가 불완전해 안전 제일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코캐시안 악지대는 우리 강원도 처럼 고산지대가 병풍처럼 두른 산맥 중심인데 나무도 울울 숲을 이뤘고 멀리 보이는 주 산매군 고봉은 하얀 눈이 치마 두르듯 멋진 모습을 드러내 활짝 시야가 트인다.

해발 120미터, 주그디디를 떠나자 곧 바로 경사진 오르막길이다. 차량 통행도 뜸한 2차선 도로변에는 느림보 소들이 풀 뜯기에 바쁘다. 가끔 돼지군도 보이고 닭도 질세라 모이를 쪼으며 공허한 시골 마을을 휘젓고 다니니 시골 동네마다 빈집이 늘어나도 미래 주인은 확보된 셈이다.

춘천 떠나 인제 쯤 오자 한계령 휘어 젖는 구부렁길을 지나야 설악에 이르듯, 메스티아 가는 길은 굽은 뱀 몸 틀듯이 휘돌기를 거듭, 해발 1.500미터까지 어지러운 곡예 운전이 반복되더니 드디어 산간 마을 메스티아에 도달한다. 오후 해가 자취를 감추기도 전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일 트레킹을 시샘하는듯 뿌리니 깊은 고산지대 날씨는 하느님 밖에 모르는 요술단지. 내일 주 트레킹 희망 속에 차 속 까불림에 지친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