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旦의 아르메니아 - 제4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종일 버스를 타고 예레반 동북지방으로 나들이 강행군이다. 일단 떠나면 10시간 동안 소음같은 영어 해설을 들어야 하고, 좁은 공간의 압박을 견디며, 굳어진 몸 풀기 바쁘게 차에 오르는 피동체 움직임을 잠시 보는 능동체 즐거움이 이길 수 있을까? 어디나 쉬는 곳은 오래 된 수도원, 성당 등 돌로 만든 건축물 구경이니 영혼 정화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정교회 정통을 들춰보는 역사 문화재 순회는 모두 천년을 넘어 비슷 비슷하여 나름의 구분은 멀리 가고 비슷한 비디오 되돌려 보기 같은 나들이다.

세반호수는 수도 예레반의 젖줄이 되고 있는 강물의 발원지로 메마른 고원지대를 적셔 주어 2,800년 전부터 도시를 이루게 한 생명수라 할 수 있다. 차로 시간 반 달려 도착, 세바나반크 수도원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바다같은 호수를 배경으로 고색창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서기 301년 국교 선언 기념으로 지은 성당은 수도원, 교육시설, 격리감호시설 등 다양하게 활용되었던 곳, 지금도 이들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된 성지 중 하나로 사랑받는 곳이다. 세반호수 이름은 검은(현지어로 세) 반호수라니 해발 1,900m 고지대에 서울시 면적과 같은 크기의 호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르메니아의 스위스라고 불리우며 국립공원까지 곁에 끼고 있는 딜리잔은 옛부터 귀족 토호들이 즐겨 찾았다는 명승지 중 첫째로, 시선 가는 끝까지 울창한 숲이 가꿔져 한국 5대 명산 중 하나에 온듯 부드러운 자태가 휴식처로 적합해 보인다. 천년도 전에 대학자, 건축기술 보유자인 고쉬 성직자가 설계한 수도원이 아직도 미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감탄을 그치지 않게 한다.

수 많은 혼란과 곡절을 겪었어도 정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살아 있는 현장은 오늘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고 있다. 하가르친 수도원은 국립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어 고쉬수도원과 나란히 사랑받는 성지가 되고 있다. 수도원 자리에 9세기부터 매 세기마다 새로운 성당이 신축되어 네 성당은 성전 콤프렉스를 이뤄 많은 신자들 발길이 찾아 들고 있다.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불미한 역사의 흔적도 지우지 않고 잘 보존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3세기 몽고인들의 래습은 아르메니아에도 예외 없이 많은 피해를 남기고 지나갔고 그후 약 2세기에 걸친 일칸국의 지배도 이 땅에 큰 파장으로 남았다.

12세기 이 일대를 휩쓴 대지진은 여러 수도원을 파괴했고, 그 복구과정에서 국교인 정교회 의식을 버리기는 커녕 동양인 모습의 성자와 동양 동물 등을 성당 장식물에 새겨넣고 그들 정통성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친 현장을 보고 나니 숨이 가빠진다. 종교적으로는 무교였던 이국 지배층을 그들 종교로 교화시키고 성자 모습으로까지 격상시켜주는 아량은 바로 가톨릭 신앙의 본질인 사랑의 넓은 실천 증거가 아닐까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