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旦의  아르메니아 - 제6신

오늘은 우즈벡으로 장시간 비행에 앞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 108년 전 터키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량학살로 희생된 연령을 위로하는 위령탑을 방문, 묵념을 올리고 불행한 역사의 종말을 기원했다. 아라라트 영산이 손에 잡힐 듯 전망이 확 트인 언덕 위에 처연하게 자리한 탑은 엄숙하지만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 드문 방문객의 마음과 아픔을 같이 하는 성스러운 곳이 되고 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을 국교로 처음 선포한 국가, 사랑만 실천하여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으로 보담는 어진 마음이 드러나는 나라, 짧은 기간 체류로 수박 겉핥기 접촉이지만 포근한 정이 오래 남을 땅이다. 아라라트산을 바라보는 공항 대기장은 분주하지만 차분하게 다시 오라 손짓하며 발길을 붙잡는다.

코카사스 3국 트레킹 + 여행, 평가에서는 호오가 엇갈리겠지만 나는 조용히 마음을 정화하며 여유있는 휴식을 취하기엔 최적지라고 생각한다. 유럽 최고봉도 있는 산악지대의 트레킹, 자연과 함께 했던 긴 여행 기간, 손때 묻지 않은 청순하고 아름다운 향이 가득한 산 속에서 오래 전 선인들 체취를 느끼는 휴식은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들의 해맑은 미소와 친절은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다. 도시로 나오면 경쟁적 삶 속에 묻혀 쫓기는 실향민들이 되겠지만 그들 맘 속 깊이 자리한 자연의 품은 언제라도 무작정 귀환을 기다릴 것 같다.

유럽과 아시아를 공유하고 있는, 남북한 합친것 보다 작은 땅을 나눈 삼형제 나라, 산악지대지만 바다로 향하는 열망을 잊지 않은, 신화를 끊임없이 되뇌이며 장구한 역사 얘기를 즐겨 입에 올리는, 목축업을 바탕으로 한 더딘 경제성장 탈피가 가능해 보이는, 고집스런 영성이 강해 마음 속 지주가 각기 다른 형제국들, 코카사스 독특한 문화권은 지금도 변한듯, 그대로인듯 발길 정리가 그리 쉽지 않다.

불의 나라,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포도주의 나라, 정통 가톨릭 본산을 자처하는 신의 나라, 코카사스 전체를 한 묶음으로 휘몰아치는 거센 외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골수를 지켜온 의지가 강한 나라들, 외부 유입 문화를 융합하기도 하고 전통의 가치도 지킬 줄 아는 이곳은 지금 디지털시대에 들어서며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달에 걸쳐 들여다 본 이곳은 더 이상 신화 속 나라가 아니고 도시화의 거센 파도와 사이버 세상을 통한 글로벌 영향과 변화를 수용하며 도시국기로 급하게 뛰어가고 있다. 백만 명 이상 국민이 북적대는 세 나라 수도는 공히 차량 홍수, 공해 천국, 선진국 유행 만능을 이뤄 외양만으로는 다른 나라 도시와 구별할 재간이 없다.

오래전부터 각자 독창적 문자를 만들어 기록을 남겨 온 콧대 높은 문화강국인 나라들, 소비에트 치하 70년, 아직도 의식 밑바닥을 지배하는 사회주의 잔재가 다 가시지 않은, 때묻지 않은 순수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이들 나라는 때에 따라서는 꿈에 그리던 고향같이 정이 넘치는 대상이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와도 지금보다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추억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곳이다. 가끔 개발에 모든 걸 담보하고 정신이 없었던 오래 전도 아닌 우리 뒷 모습을 보는 듯해 입맛이 씁쓰름하기도 하다.